기장 문인들의 나의 문학 나의 공간

안적사 가는 길

내동골을 따라 십리쯤 산속으로 걸어 올라가면 안적사가 나온다. 신라 30대 문무왕 때 원효조사와 의상조사가 수도의 곳을 찾아 명산을 순례하다 동해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장산 기슭을 지날때 난데없이 꾀꼬리 떼들이 날아와 평화롭게 노니는 모습을 보고 이곳이 예사 상서로운 곳이 아니다 하여 처음 가람을 세웠으니 이것이 안적사의 창건 유래라고 했다.

불교 신자도 아닌 내가 종종 사찰을 찾는 까닭은 버스도 없고 전기도 들어오지 않던 내 고향 내리가 너무 도시화하여 결국 산으로 밖에 갈곳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옛적에는 백동골 쪽의 산길을 따라 걸었으나 그곳이 오래전에 군사 시설에 흡수되어 마을은 물론이고 길조차 폐쇄되어 그때부터는 내동골로만 다닐 수밖에 없었다.

초여름 그곳에 발을 들여놓으면 제일 먼저 산비둘기 소리가 나를 반겨준다. 그 울음이 처량한 까닭은 어느 장마 때 처자와 논밭을 다 잃고 한이 되어 죽은 자의 원혼이 산비둘기가 되어 그렇다는 전설이 그럴듯하다. 유홍준 시인의 시구처럼 이유도 없이 억울하게 죽은 사람의 통곡같기도 하다. 육이오 당시 이 작은 산골도 예외가 아니어서 좌우대립으로 밥한 그릇의 호의에 목숨이 왔다 갔다 하였다 하니 이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이었으랴.

산을 오르는 초입에는 고만 조만한 내동못이 있다. 절에서 고시 공부하던 청년들이 그곳에서 멱을 감다 익사하는 사고가 더러 발생하였다. 그럴 때마다 촌사람들은 그 못에 원혼이 있어 그렇다고 쑥덕거리곤 했었다. 또 고시에 실패한 낭인 엿장수가 있어 하늘이 푸른 이유나 겨울 샘물이 따뜻한 이유를 물어 어린 우리를 난처하게 하였으나 그의 엿가락 적선이 우리를 졸졸 따르게 하는 데는 충분했었다.

그러나 어느 때부턴가 우리는 발전이라는 이름으로 옛것들을 허물고 지워버리기에 급급했었다. 정감 어린 눈빛은 신파로 내몰리고 꼬불꼬불 좁은 골목은 포비든 앨리로나 접할 수 있다. 이런 와중에도 그나마 시골이나 고향의 정감을 느낄 수 있는 곳이 있다면 아마 발전과 무관한 안적사 같은 곳이 될 것이다.

정관 신도시는 보배와 같은 어린이가 사는 마을이다

최근 국토연구원이 전국 인구 통계를 분석해 5세 미만 영유아 인구 비중이 높은 읍, 면, 동을 조사 발표했는데, 정관신도시가 상위권에 있는 것으로 발표되었다. 최근 저출산으로 아이들 웃음소리를 듣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그런데 나는 정관신도시에 거주하는 덕분에 내 이야기 속 주인공들을 좀 더 가까이 볼 수 있다. 그래서일까? 나는 이곳 정관읍이 참으로 정겹다.

또 정관읍에는 보물창고가 많은데, 그것은 바로 어린이들을 위한 공간이다. 정관신도시를 가로지르는 좌광천을 중심으로 정관어린이도서관, 정관도서관 그리고 정관박물관이 늘어서 있다. 특히 삼국시대 살림살이와 생활상을 구경할 수 있는 정관 박물관은 앞으로 내가 어던 이야기로 아이들을 만나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답을 주는 공간이다.

나는 어린이가 읽을 이야기를 쓰고 어린이가 부를 노래를 짓는 사람이다. 그래서 종종 정관 도서관과 정관 박물관을 드나든다. 정관 도서관에서 책을 읽다가 지루하면 정관 박물관 옥상 정원에 가기도 한다. 그곳에는 삼국시대 살림집에서 신전까지 볼 수 있는 소두방 마을이 조성되어 있는데, 그 공간에 들어서면 나의 상상력이 발동하기 시작한다.

노인은 불편한 건 참을 수 있지만 변화는 받아들일 수 없다.

우주에는 고귀한 영혼들이 산다. 간혹 그 영혼 중 일부가 피와 살로 이루어진 육체라는 작은 동굴 속에서 태어나기도 한다. 어린 우주 영혼이 부여받은 육체 동굴은 처음에는 너무 좁아서 그들이 가진 신비한 능력을 보여줄 수가 없다. 하지만 그들은 실망하지 않는다.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을 받아들이고 타인과 소통할 말을 배우고, 걷고 뛰면서 움직일 힘도 기른다. 고귀한 우주 영혼은 그렇게 점차 자신의 육체 동굴을 변화시킨다. 이쯤되면 육체 동굴은 더는 좁고 어두운 공간이 아닌 크고 아름다운 공간으로 재탄생된다. 그러면 우주 영혼은 그곳에서 신비스러운 자신의 진짜 모습을 드러낸다.

나는 상상한다. 어쩌면 나도 내가 상상한 우주 영혼일지 모른다고.

그런 생각으로 나의 공간을 들여다본다. 그런데 내 눈에 너무나 작고 평범한 동굴이 보인다. 분명 나도 나의 육체 동굴을 멋진 공간으로 변화시키고자 노력했는데 말이다. 나는 또 본다. 그리 크지 않은 작은 동굴 속에서 밖을 쳐다보고 있는 나를.

나는 동굴 밖 찬란한 햇빛을 보고 감탄하지만 너무나 빠른 변화를 보고 들으면서 오히려 눈을 감으려고 한다. 차라리 조금 작고 불편하지만 동굴 안이 더 안전하다고 느끼면서. 그 때 목소리가 들린다.

‘우주 어린이의 마음으로 다시 시작해봐. 아직 늦지 않았어.’

나는 목소리의 주인공을 찾아 눈을 번쩍 떴다. 그런데 주위에는 아무도 없다. 하지만 나는 분명 뭔가를 본 것 같다. 그것은 삼국시대 복장을 한 사람이 소두방 마을의 초가로 들어가는 뒷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