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손가락이 구글하다

문학이라고 거창하게 말할 것도 아니지만 내가 글을 쓰는 손가락의 공간은 핸드폰이다. 육신을 가진 인간으로 거주하고 사색하는 공간은 내가 사는 정관읍의 한 아파트지만 그것은 의식주의 물리적인 공간일뿐 문학으로까지는 연결되지 못한다.

정확하게 말하면 내 문학의 첫 번째 텃밭은 나의 무능력과 무지의 텅 빈 공간이고, 그것을 채우려는 지적 호기심과 독서가 두 번째 밭이며 마지막으로 그것을 받아 적는 핸드폰이 내 글쓰기 공간의 삼총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도대체 이 자그마한 기계가 무엇인지, 이것이 없는 세상은 생각할 수 없다. 나는 핸드폰을 세 번 잃어버렸다. 한 번은 택시 안에 두고 내렸고 또 한 번은 어디서 잃어버렸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두 번다 술을 마셨다. 세 번째는 가족과 함게 추석 연휴를 이용해 이탈리아 여행을 하던 중 소매치기로 그 유명한 로마 테르미니역에서 3인조에 털렸다.

폰을 분실했을 때의 난감함이야 말해 무엇하리오 만은 세 번째 로마에서의 분실은 참으로 쓰라렸다. 그 때 나는 시인으로 등단전이었으며 등단을 위해 많은 완성작을 폰에 저장해 두고 있었다.

5년여 전의 일이다. 컬러노트 앱에 저장된 수많은 메모. 초고들. 시상들이 핸드폰과 함게 사라진 것이다. 스페인 광장에서 핸드폰과 신용카드 분실 신고를 하면서 내 속을 불쑥불쑥 두드리는 것은 내가 절도범의 표적이 될 만큼 어수룩했든가, 아니면 늙었든가, 나도 별수없이 당하는구나 등등의 자학적 감정이 아니라 폰에 저장된 글들이 한순간에 날아간 것에 대한 상실감이었다.

정성들여 찍은 사진을 한 장도 간직하지 못한 채 돌아와 새 핸드폰을 마련하고 컬러노트 앱을 다시 깔아 메모를 시작했다. 기억에 의존하여 예전의 시를 복원하기도 했다. 일주일쯤 지났을까? 나로서는 지금도 그것에 대해 기적이라는 표현밖에 쓸 말이 없는 일이 일어났다. 어느 날 컬러노트를 켜니 이전의 메모가 떠 있었던 것이다. 세상에 이런 일이. 예전에 동기화를 시켜둔 기억이 희미하게 났다. 오, 주님!을 외치며 지나간 메모 속으로 나는 헤집고 들어갔다. 이제 곧 신춘문예 시즌 아닌가.

나는 그 무렵 직전 2년 동안 모 기관의 서면지점 책임자로 재직하고 있었다. 정관신도시에서 금정구로 편히 출근하다 매일 급행 버스안에서 왕복 2시간30분 정도를 앉아 있어야 했다.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핸드폰으로 기사를 보는 것은 10분이면 눈이 피곤했다. 그렇다고 숱한 시간을 창밖 구경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그때 시가 다가왔다. 물론 그전에도 시에 대한 갈망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바쁜 회사 생활을 핑계삼아 먼 미래의 숙제로 미뤄놓고 있었다. 버스 안에서 시상이 생각날 때마다 폰에 입력했다. 끊임없이 왜? 라고 묻고 나는 답을 적었다. 그것을 계속 확장해 나갔다. 점점 메모가 많아졌고 휴일에 그것을 분류하고 정리한 후 시를 완성해 나갔다. 백업된 메모 속에서 나의 등단작 ‘미륵을 묻다’를 건진 것은 참으로 행운이었다.

지금 가지고 있는 이 핸드폰으로 나는 지역 신문의 신춘문예 등단을 했고 두 편의 시집을 냈다. 또 공모전에서 문학상까지 받았으니 나는 이 핸드폰을 기실 나의 첫 번째 문학 공간이라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제 만 5년을 넘겼으니 버그가 생기기 시작했다. 아내는 교체하라고 채근하지만 나와 함께 하루 24시간 숨 쉬는 이놈을 정리하기가 쉽지 않다. 노트북으로 이 글을 쓰면서도 옆에서 유튜브 노래를 들려주는, 열일하는 내 낡은 핸드폰을 자주 쳐다본다. 고맙다! 정말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