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리쬐는 뙤약볕이 살갗을 익히듯 따갑다. 손에는 으레 한잔의 커피를 든다. 차가운 커피 한 모금으로 입안이 얼얼하다. 냉커피 한잔으로 불볕더위를 잊어보려 한다. 컵 속 얼음을 빨대로 휘저으며 도 한 모금을 마신다.
지구 표면이 칠십 퍼센트 이상이 물로 되어있어 지구를 물의 행성이라고 한다. 지구에 있는 물의 구십칠 퍼센트가 바다이다. 일상에서 사용하는 지하수, 호수, 갈물 등의 담수는 지구에 있는 물의 일퍼센트에 지나지 않는다. 바다가 지구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모든 생명체는 바다에 기대어 삶을 유지한다고 봐야한다. 위대하고 똑똑한 존재인 바다가 인간이 버린 쓰레기 집하장이 되고, 하수 오염 처리장이 된지 오래다. 한반도 크기의 열여섯 배나 되는 플라스틱 쓰레기 섬이 태평양 한가운데서 쑥쑥 커가고 있다. 이 순간에도 내가 버린 쓰레기가 쓰레기 섬을 키우는 데 일조하고 있는지 모른다. 내게서 나간 것이 반드시 내게로 돌아온다는 말대로 그 해가 오롯이 내게로 돌아오지 않을까.
컴퓨터 화면속 아기 바다거북 코에 빨대가 꽂혀 있다. 빨대가 어쩌다가 아기거북 코에 저리도 깊이 박혔을까. 일부러 코에 꽂으려해도 어려울텐데, 뾰족한 끝이 하필이면 코에 들어갔을까. 빼내려 애쓰다 더 깊이 박히게 되지 않았을까. 손이 있어 빼낼수 있을까. 말을 할 수 있어 사람에게 부탁할 수 있을까. 얼마 전 커터 칼에 손가락을 크게 베어 몇 바늘 꿰매니 쓰리고 아파 생활이 여간 불편한게 아니다. 손가락 하나 베인 것 뿐인데 일상생활 리듬이 깨지고 하지 못 하는게 어찌 그리 많은지 모른다. 아기거북 코에 박힌 빨대가 얼마나 아프고 불편하고 고통스러울까. 고통이 고스란히 녹아든 아기거북 큰 눈에 흐르는 눈물을 보니 나는 어느새 어미거북이다.
끙끙 앓으며 신음하는 소리에 아기거북을 보니 코에 하얀 게 꽂혀있다. 무딘 입으로 빼내려 하지만 입에 물어지지 않는다. 겨우 뾰족한 걸 입에 물고 빼내려 하니 빠져나오지 않고 더 깊이 들어간다. 몸을 뒤틀며 몸부림치는 아기거북에게 어미인 내가 해 줄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다. 저 기다란 것은 먹는 게 아니다. 바다에 저런 것이 언제부터인가 많아져서 나나 아기거북이 마음 놓고 살 수 없구나.
오래전 어미 바다거북인 내가 알을 낳으러 해변에 간 적이 있다. 바닷가 모래 해변에는 온갖 쓰레기가 떠내려와 알을 낳을만한 자리가 보이지 않는다. 둥지를 팔 수 있는 곳을 찾아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가 보지만, 거기도 여전히 쓰레기로 덮여있어 모래를 팔 곳이 없다. 안으로 더 들어가면 바다와 멀어져 어미 거북이인 내가 위험해진다. 알을 낳는 시간 동안 몸에 바닷물을 적시지 못하면 내가 살아남기 어렵다. 알을 낳을만한 안전한 모래 해변을 찾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해변은 온갖 쓰레기가 실려 오고 실려 나가서 더는 안전한 곳이 아니다. 바다에서 조금 먼 작은 바위 옆 모래에 둥우리를 파고 겨우 알을 낳는다. 바닷물이 조금 멀어서 걱정이다.
얼른 알을 낳고 모래로 덮은 뒤 바다로 나가야 한다. 오랜 시간 몸에 물을 적시지 못해 호흡이 어렵다. 어서 빨리 밀려오는 파도에 몸을 적셔야 하리라. 파도가 여기까지 오지 않으니 내가 찾아 나가는데 부딪히는 쓰레기가 왜이리 많을까. 부화한 아기거북들이 이렇게 험난한 길을 어찌 넘고 넘어서 바다에 돌아올까 마음이 무겁구나. 한 더미 쓰레기를 겨우 헤쳐 빠져나오니 호흡이 가빠지고 고통스러운 데 비릿하고 짭쪼름한 바다 내음이 가까이에서 난다. 그토록 그리운 바다 내음이구나. 조금만 더 가면 된다. 드디어 몸을 파도에 맡긴다.
어미거북이 한 번에 일백여 개의 알을 낳는다. 거북이 알은 육십여 일이 지나면 부화한다. 부화한 새기 거북은 본능적으로 바다로 향해 달린다. 아무리 빠르다고 해도 거북이고, 더구나 새끼 거북이이니 빠르면 얼마나 빠르겠는가. 부화한 새끼 거북은 해변에 몰려든 새들의 먹잇감이 되고 만다. 무사히 바다에 도착한 새끼 거북은 파도를 만나 헤엄쳐 바다로 나간다. 비로소 한 숨 돌리나 싶지만 다 크기 전에 물고기와 갈매기가 새끼 거북을 가만히 두지 않는다. 부화한 새끼 거북이 중 겨우 일 퍼센트만 살아남는다. 어렵게 살아남은 아기거북에게 바다는 또 하나의 모험의 장이다.
인류의 위대한 발명품인 플라스틱 빨대가 바다 동물에게 흉기다. 플라스틱 생활용품이 워낙 많다 보니 작은 빨대는 분류 배출이나 분리수거가 안중에 없어 무시된 것이이라. 묻히거나 소각장에 태워 없어지지 않은 빨대는 바다를 떠돌며 해양생물의 생명과 생존마저 위협한다. 미세 플라스틱을 먹잇감으로 먹은 플랑크톤, 플랑크톤을 먹은 생선류가 우리 집 식탁위에 올라와 우리의 건강과 안전을 위협하지 않는가. 심지어 천일염 속에서도 미세플라스틱이 나온다고 하니 암심 먹거리가 있기는 한 것인가. 플라스틱 빨대는 오초에 하나씩 생산되고, 자연 분해되는 데는 오백 년이 걸린다고 한다. 플라스틱 빨대 사용은 겨우 오 분에 지나지 않는데, 그 오분을 즐기자고 환경오렴 주범인 빨대를 계속 사용해야 할까. 이대로 가면 언젠가는 바다에 물고기보다 플라스틱이 더 많이 있을지 모른다. 이제는 우리가 바뀌어야 할 때가 아닐까.
아기거북 코에 누가 빨대를 꽂았는가. 오 분의 즐거움을 위해 해양 생태계 파괴에 동조해서야 되겠는가. 빨대없이 마시는 작은 습관 하나 정도 가져봄은 어떠할까.